ai주식/주식ai : 매각도, 인수도 아니다. 합병이란 단어만으로 정리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2개 대기업 집단이 한 울타리 안에 모인다. 통합된 회사는 두 그룹 오너 일가가 함께 경영한다. 국내 재계 역사상 전례 없는 특이한 형태의 결합이다. 애써 쉬운 표현을 찾아보면 결혼과 비슷하다. 올해 1월부터 통합을 추진 중인 한미약품그룹(한미그룹)과 OCI그룹 이야기다.

주식 : 한미그룹은 2015년 대규모 기술 수출로 이른바 ‘K-바이오’ 신호탄을 쏜 제약사다. OCI그룹은 태양광·화학소재·에너지 기업이다. 이종 기업 간 결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거래 구조가 특이해서다.

두 그룹 계약 내용에 따르면, OCI그룹의 지주사 OCI홀딩스가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가 된다.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구주·현물출자 18.6%, 신주 발행 8.4%)를 7703억원에 사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OCI그룹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들이 갖게 되는 한미OCI홀딩스 지분은 총 25.7%. 표면적으로 OCI그룹이 실질적 지배를 하는, 즉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형태다.

두 그룹이 약속한 통합 후 지분 구조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OCI홀딩스가 통합 지주사 ‘한미OCI홀딩스’로 변경되는데, 한미그룹의 후계자로 관측되는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이 지주사의 단일 최대주주(8.6%)가 된다. OCI그룹이 최대주주 지분을 사들이고도 사실상 최대주주가 되지 않는 구조다. 이우현 OCI그룹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각자대표 체제로 경영한다. 임주현 사장이 한미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을 맡고 이우현 회장이 OCI그룹의 소재·에너지 사업을 맡는다. 두 그룹은 통합 후 이사회도 각자 동수로 추천한 이사들로 구성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된 82개 대기업 집단 가운데 두 그룹이 추진하는 방식으로 결합한 곳은 없다. 재계 역사상 최초 사례다.

두 그룹의 통합 배경에는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납부 문제가 있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은 2월 중순 사내 임원들과 대화에서 OCI홀딩스와의 통합 배경 중 하나로 상속세 재원 마련을 꼽았다. 임주현 사장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 부담 해소를 위한 통합이냐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특이한 통합 방식과 함께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해결 과정도 주목한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다양한 시도 끝에 지배구조 개편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은 지켜내서다.

한미그룹 창업주 임성기 회장은 2020년 타계했다. 임성기 회장의 배우자 송영숙 회장과 자녀 3명이 1조원 규모의 주식을 상속받았다. 이때 부과받은 상속세는 5400억원이었다. 송 회장이 2000억원 이상, 세 자녀가 각각 100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했다.

한미그룹 오너 일가는 가장 먼저 주식 일부를 공익법인에 증여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에 따르면, 비영리법인에 증여된 지분은 일정 규모에 한해 세금이 면제된다. 이후 은행·증권사 등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2021년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금은 송 회장이 700억원, 세 자녀가 각각 1000억원 안팎이다.

대출 만기는 올해 2월부터 5월 사이에 몰려 있다. 원금 및 이자에 상속세 5년 연부연납 등 매년 거금 지출이 불가피해진 한미그룹 오너 일가는 두 번째 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5월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라데팡스)에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지분 11.78%(약 3200억원)를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지분매각 방식이 독특해 재계 관심을 받았다. 매각 조건에는 6개월 뒤 10%의 이자를 주고 다시 지분 일부를 되살 수 있는 환매 조건(콜옵션)이 붙었다. 라데팡스는 개별 주주가 아닌 오너 일가 특수관계자로 포함하기로 했다. 거래 조건을 종합하면 라데팡스는 지분을 매입해도 오너 일가에 우호적인 제3자가 된다.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는 사모펀드, 이른바 ‘백기사’다.

그런데 라데팡스의 투자금 모집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주요 출자자인 MG새마을금고가 지난해 7월 부실 논란으로 예금 인출 사태를겪으며 투자를 철회했다. OCI그룹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사는 통합 계획이 그 직후 결정됐다. 라데팡스가 OCI그룹을 소개했다. 라데팡스는 한미그룹, OCI그룹 양쪽 오너 일가와 친분이 있다. 송영숙 회장은 라데팡스 제안을 받고 “신뢰할 수 있는 집안”이라며 OCI그룹과 통합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회장과 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모친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은 오랜 기간 문화 활동과 사회공헌 행사 등을 함께 하면서 가깝게 지내왔다.어머니와 장녀 vs 장남과 차남

새로운 문제가 터져 나왔다.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다. 한미그룹과 라데팡스, OCI그룹 사이 거래는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이하 모녀 측)이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임성기 회장 타계 이후까지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던 후계 구도가 임주현 사장으로 선명해졌다. 장남 임종윤과 차남 임종훈 사장(이하 형제 측)은 OCI그룹과 통합 과정에서 배제됐다며 반발했다.

1월12일 통합 결정 직후부터 추진하는 모녀 측과 반대하는 형제 측의 폭로전과 비방전이 시작됐다. 형제 측은 통합 반대 의사를 행동으로 옮겼다. 3월 정기주총을 앞두고 한미사이언스 대표에 임종훈 사장이, 한미약품 대표에 임종윤 사장이 각자 대표이사로 오르겠다며 ‘경영 복귀‘ 선언을 했다. 이 계획을 위해 두 사람은 자신들과 이들이 지정한 후보자 4명 등 6명을 한미사이언스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3월 말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 상정해달라는 내용의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 일종의 ’선전포고’다. 동시에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OCI그룹과 통합 작업의 핵심 고리이자 기둥인 신주 발행(8.4%) 금지 가처분 등을 신청하면서,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졌다.

형제 측은 이번 신주 발행에 대해 회사 경영상 목적이 아닌 모녀 측의 상속세 납부 등 사익 추구가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OCI그룹과 사업 영역도 달라 통합에 체계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모녀 측은 통합 결정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사회에서 결정됐다고 맞받는다. 신주 발행과 통합을 통해 단기적으로 2024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1500억원 상당의 차입금 일부를 변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안정적 R&D 재원 확보, 사업 다각화, OCI그룹과의 협업을 통한 해외 사업망 구축 등의 경영상 과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입장도 냈다.

OCI그룹과의 통합은 3월 말 정기주총에서 결정된다.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극적인 화해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기주총에서 표 대결이 불가피하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모녀 측이 35%, 형제 측이 28.42%를 보유하고 있다. 격차는 6.58%다.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지인으로 지분 12.15%를 가진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7.38%를 가진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터다. 신동국 회장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 중이라 중립 입장을 내리라고 업계는 관측한다.

모녀 측과 형제 측이 반목하면서도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지점이 있다. ‘선대 회장의 유지’다. 형제 측은 “한미그룹이 OCI그룹과 통합으로 최상위 지주사에서 자율권을 빼앗긴 중간지주사로 전락한다. 창업주 유지에 반한다”라고 주장한다. 모녀 측은 “통합은 창업주의 유산인 ‘한미의 DNA’를 지키며 R&D 중심 제약기업으로 설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라고 맞받는다.

최근 한미그룹은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을 공개했다. 당시 함께 있던 배우자 송영숙 회장이 메모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많은 약들을 개발했지만 여전히 우리 인체는 풀지 못한 비밀이 너무나 많다. 남은 너희들이 더욱 매진해 그 비밀들을 풀어나가라. 더 좋은 약, 더 좋은 신약을 만들거라. 그것이 너희들의 숙제이자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기자명문상현 기자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한미약품그룹#경영권분쟁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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