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논리학까지 따지지는 않더라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주어와 술어의 전도이다. 언젠가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물신성을 언급하며 이들은 “자본은 어떻게 생산하는가”를 물을 뿐, “자본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묻지 않았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생산양식의 역사에서 자본이란 노동이라는 인간의 활동이 어떠한 관계를 취하는가에 따라 만들어지는 대상(Object)이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이 대상이 어떻게 노동을 만들어 내는가라는 전도된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런 문제틀은 ‘정통 마르스크주의’를 자처하는 진보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유하고 있기에, 이들 역시 “자본이 어떻게 노동을 착취하는가”를 얼마나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회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상식 역시 바로 이렇게 전도된 문제틀의 반영이며 이로부터 이른바 노동조합 ‘경제투쟁’의 한계가 노정된다.

요 며칠 간의 미디어렙 파동과 시민사회 단체들 간의 대립을 단지 미디어 운동판의 문제로만 국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바코(KOBACO)의 방송광고판매 독점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이후 그 판매를 대행할 미디어렙의 체제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 판결이 내려진 시점은 2008년 11월로 종합편성채널의 광고영업방식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도 않던 시기였다.

오히려 이 판결로 우려되는 지점은 미디어렙사들의 난립과 지상파 방송사들의 직접영업으로 인한 언론의 전면적인 자본화였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니 2010년 말에 썼던 한 내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미디어렙 관련 논의의 핵심은 ‘1공영 1민영’, ‘1사 1렙’ 등을 결정짓는 경쟁유형 확정과 MBC의 미디어렙 위상,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의 방송광고 판매를 미디어렙에 위탁할지 여부를 정하는 업무영역 등으로 볼 수 있다. 특히 MBC의 미디어렙 위상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의 미디어렙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야는 6월 국회에서 미디어렙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으나 소유구조는 공영이면서도 재원은 광고를 통해 조달하는 MBC의 광고를 공영과 민영 미디어렙, 어느 쪽에 둬야 할지에 대해 여야 모두 당내 의견마저도 엇갈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MBC가 1사 1렙으로 갈 경우, 2010년 3월 제정된 방송통신기본법 제5조에 의해 동일 서비스엔 동일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 ‘수평적 규제’ 체계의 원칙을 받아 종편채널사업자에게도 광고 직접영업을 제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현재 MBC는 ‘1사 1렙’을 주장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는 MBC가 공영미디어렙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이에 대한 언급이 빠진 미디어렙 단일안을 내놓으며 논의에서 후퇴한 가운데 민주당은 국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중 당론을 채택할 예정이다.”(2010.12. 공공미디어연구소 내부 보고서)

미디어렙 논의의 핵심은 지상파의 광고 직접영업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그리고 지역방송과 같은 취약한 재정을 가진 미디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가의 문제였다. 여기에 종편의 미디어렙 포함 여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종속변수였다. 2010년 12월 종편 사업자가 선정되고 이들에 대한 특혜 목록을 점검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미디어렙의 논의에 종편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논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종편은 빠르면 9월 중에 개국을 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한 상태에서, 이 전에 미디어렙법안을 확정하지 않으면 그 종속변수인 종편이 광고 직접영업에 나설 것이며, 이로 인해 자사의 광고 직접영업을 노리고 있는 지상파 방송국들이 일제히 종편을 핑계로 법안의 부재 기간 동안 자사의 미디어렙을 설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의의 순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조중동 종편 개국을 전후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 미칠 이들의 영향력을 우려하면서부터였다. 안철수 신드롬을 필두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 아니 욕망이 더욱 커질수록 자본보다 정치권력이, 더 나은 진보 보다 “닥치고 반MB” 전선형성에 몰두하게 된 야권과 진보진영의 담론이 그러하다.

미디어렙 법안 역시 광고 직접영업을 통한 지상파의 자본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내년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매체들을 견제할 지에 대한 문제 틀로 전환되었다. 이런 문제틀은 곧바로 미디어렙 논의의 한 부분이자 그 대상이었던 종편의 미디어렙 포함 여부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도로 이어졌다. 요컨대 “미디어의 자본화를 막기 위한 미디어렙”에서 “조중동 종편을 막기 위한 미디어렙”으로 초점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전도는 결코 낯설지가 않다. MB 정권의 출범은 곧 과거 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시작이었으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더 나은 진보보다 일단 MB를 몰아내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갱신된 그러나 오래된 비판적 지지의 재판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미디어렙 문제에서도 미디어 시장 전체의 자본화에 대한 저항보다 일단 “조중동 말살”이라는 당면과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조중동 종편을 막기 위한 미디어렙”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편을 막을 수만 있다면 미디어렙 법안의 부재로 도래할 지상파(특히 MBC)의 직접영업과 자본화를 허용할 수 있다는, 그리하여 향후 반MB 전선에 유리한 미디어 진영을 구축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 벌어진 미디어렙 논란을 단지 언론노조와 시민사회 내부의 의견대립, 혹은 밥그릇 싸움만으로 볼 수는 없다. 설령 미디어 운동이라는 옛날식의 ‘부문 운동’이라 해도 상관없다. 부문 운동이라는 구체적 현실에서 점철되는 위험한 논리들은 다시 정권교체와 같은 보다 추상적 수준의 운동에서도 동일하게 재생산된다. 언론, 예술, 문화, 교육 등의 얼핏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운동판에서 그러한 논리가 관철될수록 정치라는 광범위한 담론의 장에서 그것이 철저하게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미디어렙 논란에 잠재된 전도된 문제틀은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조중동 종편을 막기 위한 미디어렙”이란 논리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미디어 운동 또한 여기에 복무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도구적 언론관’의 재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