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박진영은 지난 연말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유행을 좇아 슬릭백 챌린지를 감행했지만 전혀 미끄러지지 않는 몸동작은 도열한 직원들의 영혼 없는 환호성과 부조화를 이루며 놀림거리가 됐다. 청룡 영화상 축하 공연에선 시종일관 무참하게 음정을 이탈하는 목소리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배우들과 어우러져 폭발적 반응을 불렀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많은 이에게 웃음을 줬지만 박진영에겐 뼈아픈 경험이었을 것 같다. 그가 평소 음악에 관해 완벽주의를 지향해 왔고, ‘딴따라’를 자임하며 무대에 큰 애착을 피력해 왔기에 그렇다. 박진영의 ‘현역 가수’란 정체성은 동년배 가수 출신 기획사 오너나 임원들은 한참 전에 옷을 벗은 역할이다.

박진영은 1971년 생으로 1995년 가요계에 데뷔했다. 90년대는 가수 박진영의 기원이자 인간 박진영의 시대였다. 그는 엑스 세대, 신세대 혹은 신인류라고 호명되던 새로운 세대의 일원이었다. 가수의 캐릭터와 개인의 성품 모두 그 특징을 체현하고 있었다. 파격적 노랫말로 욕망을 표현했고, 춤사위에 도취한 표정으로 느낌과 욕구를 떳떳하게 드러냈다. 박진영은 말 잘하는 가수로도 유명했다. 인터뷰와 토크쇼에서 조리 있는 말솜씨로 주관을 밝히며 자유분방하게 웅변했다. 9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자유와 해방, 개인과 욕망, 개방과 일탈 같은 것들이 그 시절의 키워드였다. 박진영은 댄스 가요란 장르에서 어느 누구와도 구분되는 모습으로 영역을 확보했고 시대의 공기를 들이쉬고 내뿜었다.

박진영이 특별했던 점은 단순히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을 욕망의 쇼윈도에 전시하고 대상화했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어쩌면 그는 한국에서 스스로를 섹스어필 상품으로 기획한 최초의 남자 연예인은 아니었을까. 데뷔곡 ‘날 떠나지 마’에서 브라운관을 향해 엉덩이를 내밀어 쓰다듬고, ‘청혼가’에서 배꼽티를 입은 채 허리를 흔들고, ‘엘리베이터’ MV에서 상반신 누드로 춤을 추고, 저 유명한 ‘비닐 바지’를 입은 기행이 다 그렇다. 90년대는 문화계 성애 표현이 사회적 화두였지만, 성별 경계를 횡단해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몸을 대상화한 사례는 흔치 않았다. 만약 박진영이 김원준처럼 잘생긴 외모였다면 여성들이 즐기는 섹슈얼리티 상품으로 소비되고 말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어떠한 문화적 항명이나 난동처럼 받아들여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대상화하는 남성 주체라는 정체성이 음반 판매고나 히트곡 숫자가 기록적이진 않았던 그를 90년대의 기류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존재로 만들었다.

박진영이 한평생 추구한 ‘광대’ ‘딴따라’는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다. 이건 역시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박진영은 ‘광대’를 천직으로 여기는 것 같고, 오십이 넘은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 걸 보면 진심일 것 같다. 하지만 무대 자체가 목적이라기엔 그의 인생은 그와 반대되는 항로로 나아갔었다. 20년 전부터 필생의 과업처럼 추진했던 미국 진출은 춤과 노래를 수단으로 명예와 업적을 남기기 위한 일이었다. 물론 이 둘을 조화롭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다. 그가 구하는 광대의 기쁨은 무대에서 ‘논다’는 사실을 넘어 사람들 앞에 자신을 전시하고 주목을 받는 데서 오는 것이고 이는 곧 세상에 대한 인정욕구와 자아실현으로 수렴한다. 그는 인생의 큰 챕터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미션이 필요했다. 그 목적을 위해 춤과 노래는 물론 때로는 JYP 가수들이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것이 한때는 ‘미국병’이었고 지금은 그가 공언하고 다니는 “환갑에도 댄스 가수로 살아남기”다.

90년대의 박진영은 분명 시대를 선도하는, 적어도 시대의 선두에서 화두를 던지던 ‘딴따라’였다. 하지만 52살이 된 지금도 그가 시대의 첨탑 위에 서있다고 할 수는 없다. 상업문화의 표현 범주와 수위가 갈 수 있는 데까지 확보된 지금은 “섹스는 게임이다” 같은 명제를 통해 욕망을 표현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 더 이상 파격이 되지 못한다. 박진영은 ‘20대 때보다 지금 춤을 더 잘 추고 노래하는 것도 편하다’라고 말한다. 환갑 때 가장 완벽한 공연을 하기 위해 1일 1식을 엄수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여다보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높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슬릭백 챌린지에 실패하고 청룡 영화상에서 방송 사고에 가까운 무대를 저지른 건 현실과 기대의 차이가 끝내 봉합되지 못하고 터져 나온 해프닝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강조해 온 박진영은 누구보다 춤과 노래가 무너진 허술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런 아이러니를 통해 풍자의 대상이 되어 대중에게 회자되는 것이 지금의 박진영이 ‘딴따라’로서 특별하게 소비될 수 있는 국면인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 큰 무대에 섭외되는 이유는 그가 성공한 기성세대이자 대형 기획사 최대 주주로서 갖는 지위와 권력 아닐까. 또한 박진영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늙어 가고 있어서 나이 든 댄스 가수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직도 자신이 젊다고 믿는 왕년의 엑스 세대들이 ‘MZ 세대’와 불협화음 속에 공존하며 사회상이 재편되고 있는 백세 인생 시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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