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영웅호걸을 만나고 싶어요.

아내와 사귄 뒤 가졌던 친구들과의 첫 술자리. 진부하지만 빠질 수 없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넌 네 여친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 거냐?” 곧 이은 저의 대답. “응, 걘 대인배야. 마치 도산서원에 있는 오래된 고목 같다고나 할까” 순간 굳어버린 친구들의 표정. ‘나비도, 꽃도, 토끼도, 강아지도 아닌 오래된 고목 같다고?’ ‘지금 네가 만나는 여자 친구가 혹시… 몇 살?’ ‘그녀의 이름은……신사임당?’ 녀석들의 표정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부연 설명 했습니다. “응. 토끼나 강아지처럼 깜찍하거나, 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대인배 기질이 펄펄 넘치는 사람이야. 마치 걜 보고 있으면 맹자의 호연지기가 떠오른다고나 할까?” 부연 설명은 친구들을 더욱 당황케 했습니다. 물론 저도 인정합니다. 고목, 대인배, 호연지기. 전부 여자 친구에게 사용될 수식어가 아니죠.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아내의 몸에서는 실제로 대장부의 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걸 말이죠. (게다가 그녀는 덩치도 대장부입니다.)

“사무실에도 고양이가 필요하다. 비록 고양이의 육체를 가졌더라도 호랑이처럼 행동하는 동물. 걔를 사무실에 데려다 놓으면 아무 때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책상이나 의자, 복사기 등에 훌쩍 올라가서 늘어져 자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위풍당당 개청춘 中 P.147)

사실 저도 두 번의 연애를 경험하고 난 뒤, 나름의 이상형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1.내 말을 진심으로 즐겁게 들어줄 수 있을 것. 2.정치적 이상향이 같을 것 3.글래머일 것 4.유머 코드가 같을 것. 5.끝으로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닐 것. 특히 5번째 기준이 중요했습니다. 제 자신이 워낙 속 좁기로는 밴댕이 소갈딱지를 자랑하느라, 호탕한 대인배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자 친구도 가급적 수호지나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 같은 여성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감정적 비열이 몹시 높아 어지간한 사건으로는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외부 사건에는 ‘허허’ 웃고 그냥 지나가고마는, 심지어 내가 삐쳐도 ‘허허’ 웃고 지나가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때문에 전 아내의 모습을 보고 첫 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표정의 종류도 몇 개 없습니다. 대부분 ‘허허’에 어울리는 한 가지의 표정을 짓고 있거든요.) 한 마디로 아내는 쉽게 화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적에 초연하면서도 직원에게 다정하고 실수에 쿨하면서도 영리하고 정의로운 상사라니 아이참, 생각만 해도 멋질 거 같은데.” (위풍당당 개청춘 中 P.84)

Chapter2:알고 보니 대인배는 초식동물

제가 대인배를 처음 만난 건, 언론사를 준비하기 위한 모임에서였습니다. 우린 모두 언론인 지망생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로 한 일은 글쓰기 연습이었는데요. 당시 수업을 했던 선생님은 독특한 방식으로 글쓰기를 가르치셨습니다. 바로 학생들이 쓴 글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한 뒤, 공개 평가를 하도록 한 것이죠. 처음엔 대부분 우물쭈물 하지만 곧이어 맹렬한 비평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제 글은 참 인기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무플이었습니다. 칭찬도 비판도 별로 없는.

반면 아내의 글은 인기가 좋았습니다. 우선 재밌었습니다. 적재적소에 짧은 유머를 던지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게다가 글도 대인배라 시원시원하게 잘 읽혔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아내 글에 쉽게 공감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투쟁은 기운 좋은 이십대가 하고, 감봉도 처자식 없는 이십대가 당하는 것 까진 그렇다 쳐요. 아무리 그래도 386선배님들, 회사에선 정치 얘기 그만하시고 일 좀 하세요. 우리가 무슨 봉입니까.” (위풍당당 개청춘 中, P.170)

그럼에도 아내는 언론사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글쓰기 선생님은 아내의 글에서 초식동물의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내의 글이 언론사의 일과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인은 팩트의 세밀한 부분을 파고들고, 사소한 논리적 결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언론사는 육식 동물의 날카로운 눈썰미와 적당한 공격성, 그리고 한 주제를 잘근 잘근 씹어 먹는 집요함이 요구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사바나에서 풀을 뜯는 코끼리였습니다. 충분히 사납지 못했던 것이죠. 하나를 깊이 있게 물어뜯지도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호탕한 호연지기를 자랑하는 대장부에게 팩트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기자 업무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얘기죠.

결국 아내는 언론사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내는 진짜 풀만 뜯어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습니다. 3년 전 고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던 아내는 돌연 채식주의를 선언한 것이죠. 아내는 미국의 공장형 축산시설에 경악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채식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육식성의 새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약한 것들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철학과, 시장논리에 따른 실용주의, 그리고 기술제도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다…..그런 면에서 나는 채식주의란 단지 고기를 안 먹는 게 아니라 초식성 문화를 수호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최소한의 실천 강령이다.” (위풍당당 개청춘 中 P.205-6)

아내가 채식주의란 사실을 함께 일하는 동료 여직원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와. 진짜 멋있는 것 같아요. 자기 주관대로 실천하며 산다는 게…” 순간 우쭐해졌습니다. 많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은 다시 한 번 내 이상형 기준 5번 (존경할 수 있는 여성 어쩌고)을 상기시켰습니다.

Chapter3. 초식 대인, 책 내다

그런 아내가 책을 냈습니다. 대인배가 회사라는 소인배들의 집단에서, 그것도 행정이라는 가장 소심한 일을 하고 있자니 얼마나 성질이 뻗쳤겠습니까. 그렇다고 대놓고 모 장관처럼 ‘성질 뻗쳐서 정말’이라고 화낼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쌓인 답답함과 분노를 블로그에 쏟아냈고, 이 글에 살이 덧붙여져 책 <위풍당당 개청춘>이 나왔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순간인가요. 다시 한 번 이상형 기준 5번을 상기하는 바입니다.)

글을 모으고 나니 오늘날을 살아가는 20대 여성 화이트 컬러 근로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제 눈엔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고, 쉽게 읽히고, 흥미진진한 데, 남편이란 작자가 아무리 칭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해서 다른 것 다 집어치고 이것 하나 만 확인하고자 합니다. <위풍당당 개청춘>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입니다. 동거인으로서 말하건데 솔직함이 97%에 달합니다. (아내도 인간인지라. 3% 정도의 과장은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는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혹시 서점에 들를 일이 있다면, 인터넷 서점을 들락날락 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위풍당당 개청춘>을 한 번 찾아보시죠. 덤으로 구입까지 한다면 금상첨화고요.

책, 영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부지런한 블로거, ‘알스카토’입니다. (http://blog.naver.com/haine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