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Love wins”라는 노래 제목이 논란에 오른 후 공개된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는 역시 많은 말을 부르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구호를 가져다 썼다는 비판 이후 “Love wins all”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뮤직비디오에선 이성애자 장애인 배역이 등장한다. 아이유와 방탄소년단 뷔가 각각 말 못 하고 앞 못 보는 이들로 분해 로맨스를 펼친다.

MV에는 ‘대혐오’를 표상하는 큐브 조형물이 두 사람을 쫓는 등 해석을 독촉하는 상징들이 직접적으로 연출돼 있다. MV 같은 이미지 콘텐츠를 해석하는 건 케이팝 팬들의 즐거움이지만, 텍스트를 평가하는 데 꼭 도움이 되진 않는다. 해석은 의미 부여를 거쳐 텍스트를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다. 갖가지 해석이 덧대어지면서 텍스트의 본래 구조나 작자의 의도가 감춰지거나 부풀려진다. 저마다의 해석에 달렸으니 정답은 없다는 식으로 객관화된 평가가 방기될 수도 있다.

“Love wins all”처럼 작품의 메시지 및 연출 상태가 논점이 되는 경우는 가치중립적 해석을 넘어선 가치판단적 비평이 필요하다. “Love wins all” MV는 기이한 인상이 들 만큼 낡았다. 만듦새가 아니라 감수성이 올드하다. 이토록 장애를 새하얗게 대상화한 영상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사랑’의 환상을 현현시키는 캠코더를 통해 장애가 없는 '정상인'의 모습으로 행복해하는 두 사람이 나타나는 등, MV에서 재현되는 장애는 정상과 비정상 이분법의 경계 위에서 그려진다. 그런 시선을 뒤집으면 장애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맞닿은 결핍의 상태로 이해하는 관성이 도사리고 있다.

MV에서 뷔와 아이유는 천진하고 순결하고 무력하고 가련해 보인다. 비록 그들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묘사돼 있더라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굽어살피듯 대상화하는 묘사다. 이렇듯 장애에 대한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모습은 이십 세기 이후 발전하고 정립된 인권의식 및 소수자 담론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MV의 상상력이 굉장히 오래전, 이를테면 팔구십 년 대 한국 방송에서 만들었을 법한 캠페인 영상을 본 것처럼 오래된 인상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장애에 대한 낡은 관념을 전시하는 데서 머물지 않는다. 대상화된 장애의 특성이 창작자의 영감을 표현하고 연기를 맡은 가수들을 치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며 그러한 태도가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다. “Love wins all” MV는 물론, 그로 대표되는 앨범 기획 자체가 혼란스럽고 모순된 균열을 드러낸다. 수화를 '사랑스러운 손짓', 시각장애를 '오드 아이'로 표현한 건 장애에 관한 표상을 취향적 애호의 아이템처럼 사용하는 일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뷔를 보살피는 아이유의 모습은 종교적 성녀 이미지가 재현된 전형적 버전이다. 여성성과 모성의 등치, 여성성에 대한 성속 이분법은 여성혐오, Misogyny란 개념의 관습적 토대를 이룬다. 혐오를 구성하는 태도는 나의 관념대로 타자를 바라보고 규정하는 대상화다. 무려 "대혐오의 시대"에 저항한다는 선언 아래, 여성·장애인·성소수자를 막론한 온갖 소수자가 대상화되고 그들의 표상이 전유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Love wins all” MV를 보면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케이팝은 한국에서 가장 글로벌한 문화산업이다. 한국보다 앞선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 정치적 올바름에 친화적인 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여성과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의 소수자 그룹이 케이팝 해외 팬덤의 주요 집단이란 사실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선한 영향력” 같은 낯간지러운 말이 케이팝을 이르는 수식어로 통용돼 온 것이다. 케이팝을 대표하는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인기 멤버가 참여한 MV의 윤리적 상태, 소수자 의제에 관한 인식수준이 이렇다는 건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Love wins all”을 받아들이는 자리에서의 논의가 한층 중요해 보인다. 영향력 큰 창작자가 우리 시대의 혐오 같은 사회적 의제를 다루겠다면, 이것보다는 겸손하고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치열한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아이유가 그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면 “대혐오의 시대에 대한 저항을 시적으로 승화했다” 같은 영혼 없는 찬사의 말들보다 앞으로의 창작 인생에 훨씬 이로운 각성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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