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재원 :

ai 투자 : # 지난 1월 18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윤석열 대통령이 행사장으로 들어오면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는 과정에서 강성희 국회의원(진보당)이 윤 대통령에게 큰소리로 말을 건넨다.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집니다."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강 의원의 입을 틀어막은 채 그를 번쩍 들어 식장 밖으로 내던졌다. 영상을 보면 윤 대통령이 뒤돌아서면서 이 장면을 목격한 듯한데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2월 16일 대전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졸업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며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 마음껏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저와 정부가 힘껏 지원하겠다”고 축사를 하는 순간 졸업생 신민기 씨가 큰소리로 외쳤다. “R&D 예산 복원하십시오,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 복원하십시오.” 이 순간 졸업복을 입고 졸업생으로 위장해 자리에 앉아있던 경호원들과 양복 입은 경호원 여러 명이 순식간에 신 씨의 입을 틀어막고 엎어뜨린 뒤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대통령은 이 소동을 보았고 신 씨의 외침을 들었음직도 한데 그대로 축사를 진행했다.

보수 진보 가리지 않은 대통령 심기 경호

# 이보다 앞선 2월 1일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대통령 경호처에 의해 입을 막힌 채 끌려 나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앞선 두 건의 입틀막 사건이 큰 이슈가 되면서 임 회장이 봉변한 사실도 덩달아 이슈가 된 것이다. 이날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행사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한 윤 대통령의 여덟 번째 민생 토론회로, 초청을 받지 못한 그가 계속 참관을 요구하면서 설전을 벌이다가 결국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입을 틀어막히고 연행되었다. 이 장면을 담은 이른바 '입틀막' 영상은 20여 일 지난 시점에 퍼졌는데, 그는 끌려 나가면서 “오늘 행사 제목이 뭡니까? 의료계 대표자가 왔는데 대통령님이 말씀을 안 듣겠다는게… 말씀을… 정말로 대통령님! 읍읍…” 항의하다가 입을 틀어 막힌 것이다. 그는 이후 분당경찰서에서 퇴거불응죄로 4시간 넘게 조사를 받고 당일 오후 9시에 석방됐다.

대통령실은 ‘입틀막’ 사건이 벌어지면 “경호 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며 “이는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언론은 또 이들 이른바 ‘소란 행위자’들의 과거 경력(강성희 의원 경우 노동운동 등 관련 전과)이나 현재의 정치성향(카이스트 졸업생이면서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을 들먹이며, 이들의 행위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한 과격행위이며 따라서 대통령실 경호처의 ‘입틀막’은 정당하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입틀막 사건의 본질은 행위자의 정치기획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이 정치적 반대자 혹은 항의자의 ‘의사표현’을 제압하는 폭력적 방식에 있는 것이다.(더구나 분당서울대병원 입틀막 사건 당사자인 임현택 씨는 간호법에 반대하고, 지난 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목에 칼을 맞고 응급수술을 위해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헬기 이송한 것과 관련 이 대표 등을 업무방해 및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형사고발한 보수성향의 인물로 알려졌다.)

경호원 제지하고 항의자 발언 끝까지 들은 노무현과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라고는 하지만 큰소리로 대통령에게 제안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것이 대통령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2007년 4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금지 규제에 관한 법률' 서명 행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마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가 휠체어를 타고 대통령 앞으로 다가오면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고. 순간 경호원들이 그를 에워싸자 노 대통령이 경호원들을 향해 “손대지 마시오”라고 단호하게 지시했다. 이어 소동을 일으킨 박 대표에게 3분의 시간을 준 후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던 것이다.

2013년 11월 미국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 개혁안 연설을 하던 중 한 이민자 청년이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부터 가족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매일 같이 수많은 이민자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외치면서 연설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른 이민자들도 "추방을 중단하라"고 연호하기 시작하면서 장내가 소란스러운 와중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장내를 정리하려는 경호원들을 만류하는 듯한 손짓을 한 후 “난 이 젊은이들의 열정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이 청년들은 진심으로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거니까”라며 연설을 이어나가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결국 ‘입틀막 사건’은 권력이 국민을 어떤 자세로 대우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를 기울이려는 민주적 권력이냐,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대자의 항의를 찍어 누르려는 권위주의적 권력이냐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실체적 위협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는 목적보다 대통령 귀에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는 심기 경호가 끼치는 나쁜 영향보다 더 위험한 것이, 대통령 측근들은 언제든 서슴없이 폭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인 것이다.

반대자 항의 찍어누르려는 권위주의 권력의 잠재의식

그런 의미에서 이 정권의 ‘입틀막’ 징조는 ‘바이든-날리며’ 등 몇 건의 보도를 문제삼아 아예 MBC의 대통령실 취재 자체를 봉쇄하려는 작태에서부터 엿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MBC를 관리 감독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몇몇 이사들을 갈아치우고, 갈아치운 이사회를 통해 MBC 경영진을 갈아치움으로써 MBC를 완전히 정권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공영방송 장악 차원의 문제와도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이다. 정권에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언제든, 어떤 방법으로든, 설사 그것이 부당하거나 관례에 어긋난 것이더라도, 폭력적인 수단을 써서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겠다는 일차원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발상이 결국 대통령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MBC는 잘 들어라~”라는 망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황상무의 ‘비판언론 회칼 테러 위협’ 발언은 농담도 아니고 말실수도 아니다. 얼마든지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비판언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윤 정권의 폭력성이며, ‘입틀막’은 그 상징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은 어떤 기준으로도 민주주의적 권력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민주주의 가치들은 언론이라고 하는 표현의 자유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극우적인 인사로 알려진 임현택 의사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 정부는 의사들을 전문가로 존중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타도해야 할 범죄자나 악의 화신이라고 보고 있다”며 “군부독재가 다시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임 씨가 ‘입틀막’을 당한 지 채 두 달도 안 된 3월 26일 역대 최다 득표율로 의협 회장에 당선됐다. 그리고는 총선에서 국힘당 후보 낙선운동을 다짐했다. 세상일은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는데 그것을 인과응보라 하기도 하고 아주 쉬운 우리말로는 ‘뿌린 대로 거둔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