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 모두 해마다 이맘 때 즈음이면 지난해의 성과를 결산·평가하고 올 한해의 전망을 내놓는 보고서들을 공개한다. 그러나 정확한 예측은 제쳐놓고라도 어느 정도의 전망조차 확신할 수 없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국내 유수의 ‘지식/정보권력’ 집단처럼 10여 가지 예측을 내놓고 이듬해 그 중 몇 개가 적중했는지 스스로 평가할 자신도 없다. 특히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같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목표들이 난무하는 계획들을 제출하는 기관을 마주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향후 2기 방통위의 행보는 지난 1기의 ‘업적(?)’과 최근의 이슈들을 생각할 때 두 가지 방향에서 짚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난 3년 동안 방통위가 그토록 바랬으나 아직 이루지 못했던, 그래서 당분간은 지속될 “오래된 미래”이며, 다른 하나는 대통령 업무보고나 위원장의 취임사와 같은 공식적 발언에서 표명된 “불안한 미래”이다. 정작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뻔한 구분이다. 허나 어쩌랴, 지난 1기 방통위 역시 그렇게 뻔하게 굴러갔는데.

investing : 방통위의 오래된 미래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지난 주말 임명된 2기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구성을 보면 1기 동안 보여왔던 최시중 위원장의 ‘독임제적 운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속의 근거는 지난 1기 동안 최시중 위원장에겐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던 통신분야의 방통위 실무진이 상임위원으로 합류했고, 방송정책에 있어서는 KBS와 DMB를 거친 인사가 뒷받침 해줄 것이란 예측에 있다.

더욱이 지난 3년 동안 방통위의 안건 중 94%를 ‘홀로’ 제출한 최시중 위원장의 의결진행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미 1기 내내 중요한 의결사항이 있을 때마다, 때로는 방통위 ‘고위 직원’의 입을 통하거나 자신이 직접 과감히 결과를 예단하던 관행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독임제적 운영이 법·제도적 요소보다 다분히 관행적인 요소들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향후 야당추천 상임위원들의 활약에 따라 그 “당분간”의 지속시간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시중 위원장의 연임은 그 자체만으로 지난 1기의 정책기조들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단, 노골적인 편들기나 직접적 개입을 통한 정책추진의 미숙함은 지난 시기의 학습효과가 발휘된다면 상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종편 특혜는 없다”라는 최 위원장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방통위의 제도개선 전담반이 내놓은 지상파 의무재전송의 두 가지 안(KBS2TV 확대 적용 혹은 모든 지상파 채널의 한시적 의무재송신)은 표면적으론 지상파와 케이블사업자 간 분쟁의 조정이지만, 이 대립구도의 유지를 통해 종편 의무재전송이라는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8일 있었던 위원장 취임사로 밝힌 주요 과제 중 ‘광고·편성규제의 대폭 완화’, ‘미디어렙 경쟁체제 조기 구축’, ‘콘텐츠 경쟁력 강화’ 등에서는 문구 어디를 보아도 “종편”의 ‘종’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1기 동안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종편의 유아기 부양은 이처럼 ‘미디어 사업자 모두를 위한, 그러나 아무나 얻어 갈 수 없는’ 규제완화의 결과물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이런 전략이 노리는 효과는 단순하다. 종편 특혜란 단지 방통위에 반대하는 언론운동·시민사회단체들만의 언어이며 방통위는 결코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알리바이’ 만들기에 다름 아니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방통위의 전략 또한 예측가능하다. 이젠 더 이상 “방송장악”이란 표현을 쓰기에도 지칠만큼 이미 지상파에 대한 정권과 방통위의 ‘접수’는 끝났다고 방통위는 생각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방송장악’이란 완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기에 적어도 2012년 대선 때까지는 꾸준히 지속될 것이나 그 방식 또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크게 보아 이 장악의 지속은 두 가지 지점에서 진행될 것이다.

하나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방송사들 내부의 조직개편과 통제시스템의 안착화가 그것으로,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역 MBC 통폐합이 보여주듯 이미 장악이 끝난 지상파 내 권력레짐의 전횡을 방통위는 단지 ‘승인’해 주는 것만으로 이 장악의 지속을 추진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얼마 전 방통심의위가 내린 <추적 60분> 천안함 보도에 대한 징계 의결에서 엿볼 수 있다. 이미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징계 – 엄기영 사장 사퇴까지의 과정에서 맛을 들인 “방통심의위의 검열-방통위의 확인”이라는 방식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올해 지속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방통위는 자신들의 직접적 개입은 없었다는 알리바이를 내세우겠지만 말이다.

재원 : 방통위의 불안한 미래

어찌되었건 지속될 방통위의 “오래된 미래”와 달리 최시중 위원장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언급하는 ‘광고시장 확대’와 2기 방통위의 암묵적/결정적 임무일 ‘정권재창출’은 “불안한 미래”일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2015년까지 GDP의 1%에 달하는 광고시장 규모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는 목표가 아니라 광고규제 완화의 명분에 불과하다. 규제품목 해제나 광고총량제의 도입, 간접/중간광고 허용과 같은 편성규제 완화, 스마트미디어 광고시장 활성화 방안 등은 시장논리로 보았을 때조차 수요는 전혀 고려치 않는 공급측의 짝사랑에 가깝다.

이른바 “고환율-저금리”로 요약되는 MB노믹스는 지난 3년 동안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사상최대인 170조로 끌어올렸음에도 투자의 부진함과 수입가격의 상승을, 가계에는 사상최대의 부채만을 안겨주었다. 이는 결국 광고시장 확대의 주요요인인 내수경기의 불안정성을 가속화할 것이고, 연초부터 터진 북아프리카 석유시장의 불안과 일본 대지진의 후폭풍은 국내 기업의 높은 수출의존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런 불안정성이 1년이라는 단기에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5년간 5조 7천억 원을 늘리겠다는 방통위의 유효기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다.

끝으로 1기 방통위가 보여주었던 정치권력에의 종속성과 그 부산물인 종편의 행보는 2012년 총선이 가장 중요한 기점(critical point)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렙과 광고규제완화, 의무전송 문제, KBS 시청료 인상 등의 중요사안이 올해 안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면 내년 총선은 방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종편4사들에겐 그야 말로 보수권력 내 ‘차별화된 보도전략’을 구사할 호기가 될 것이다.

특히 종편4사 모두 출범 초기 시청률을 선점할 콘텐츠로 ‘보도’를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은 총선의 결과에 따라 대선 직전까지 현 정권에 대한 레임덕 현상을 부채질하거나, 차기대권 주자를 향한 노골적인 지원사격에 나설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지난 1기에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방통심의위-방통위’라는 방송장악 루트는 이들 종편에겐 먹히지 않게 되어 그야말로 “비대칭” 검열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방통위, 그들만이 사는 세상

생물학에서 쓰이는 개념 중 “움벨트(Umbelt)”라는 용어가 있다. 우리말로는 “환경세계”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각각의 생물 종들이 자신들만의 인식을 통해 파악하는 세계를 뜻한다. 소금쟁이에겐 세계란 수면 위의 전후좌우 밖에 없는 2차원의 세계이며, 배추흰나비에게는 적외선의 세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2기 방통위의 전망은 결국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2011년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달려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움벨트를 깨뜨릴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에 방통위의 전망이 좌우될 것이다. 여전히 방통위가 1기의 오래된 미래에 집착하며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는 눈을 감는다면 그들의 움벨트를 깨뜨릴 세력은 어디에 있을까? 또 다른 불안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현 정권일까, 아니면 재집권을 노리는 다른 세력일까? 이 질문 자체가 또 다른 움벨트의 산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