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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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총선은 정권심판론에 힘입어 야권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정부의 무능한 국정운영이나 정치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이 정도 결과를 가져온 요인을 그 두 가지만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주권자의 흩어진 표심을 한 방향으로 결집시킨 정권심판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서 주권자가 직접 경제심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위기감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민생대란 사태의 주범인 정부와 이를 방치한 여당에 보내는 경고장이라고 봐야 하는 이유다.

민생심판에 담긴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처참한 경제성적표를 내밀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함에 대한 심판이다. 사상 유례없는 ▲1.4% 저성장 충격▲-56조 원의 세수펑크 참사 ▲대규모 무역적자 등 추락하는 경제지표를 심판한 것이다.

둘째,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하며 기존의 경제질서를 훼손하는 이념 편향성을 심판했다고 본다. 관치에 깊게 뿌리 내린, 철 지난 시장주의 이념이 중산층과 서민경제를 선별 타격하는 정책 오류를 심판한 것이다.

셋째는무너진 정책 신뢰에 대한 분노의 심판이다. 정부가 민생토론회 등을 이용해 구조적 위험에 졸속 대책으로 대응하는 사이, 민생경제는 고물가·고금리 충격을 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물론, 정부의 폭주를 입법으로 견제하지 못한 국회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생심판은 민주당에게도 “유능한 경제정당, 대안 있는 민생정당”으로 거듭날 마지막 기회를 준 것으로 봐야 한다.

처참한 경제성적표에 깃든 무능을 심판한 선거
큰사진보기 ▲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국회 도서관에 설치된 22대총선 개표상황실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침통한 표정으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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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 경제지표들은 한국경제호가 암초에 부딪혀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첫 번째 암초는 ‘1.4%의 저성장 충격’에 어른거리는 장기 불황의 그림자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1%대 미만의 성장을 기록한 적은 단 다섯 차례뿐인데, 이 중 4번은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다.

즉 ▲1980년 2차 석유파동(-1.6%) ▲1998년 외환위기(-5.1%) ▲2009년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사태(-0.7%)가 그것이다. 2023년이 중요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경제위기가 아니고도 1%대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세계 GDP 순위는 2020년 10위에서 2023년에는 13위까지 밀렸는데, 1400원 방어선을 위협하는 원-달러 환율을 고려하면 올해에는 14위인 호주에게도 꼬리를 밟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수출경제 성적표도 총체적 난국임을 보여준다. 무역수지는 2년 연속 대규모 적자(2022년 -472억 달러, 2023년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IMF 208개국 중 순위가 2021년 18위에서 2023년 상반기에 200위로 급락하는 수모를 견뎌내야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수출이 늘어도 수지구조가 악화되는 불황형 적자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국 수출은 2021년 25.3%에서 2023년 19.7%로 급락한 상태이고, 대중국 무역수지는 1992년 대중 수교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아무리 불편한 지표들을 감춘다 해도 ‘사상 처음’이 붙은 지표들을 국민이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내수경제 성적표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초유의 고물가·고금리 충격의 직격탄을 맞아 실질소득 기조적으로 감소하며 소비 불황을 견인하는 구조적 위험에 빠진 상태다. 가계 실질소득은 2022년 2분기에 6.9%로 정점을 찍고 증가한 이후 2022년 4분기 -1.1%, 2023년 4분기 0.5% 등으로 아예 길게 드러누워 버렸다. 여기에,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부채(가계 및 자영업자대출) 증분만 1000조 원을 넘어서는 등 부채발 경제위기가 목전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총선 심판엔 민생위기에 긴축으로 대응한 정부도 용서하기 어렵지만, 매년 60조 원에 달하는 펜데믹 이자폭리를 거둬들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분노도 담겨있다.

이번 총선은 경제성적표로 검증된 무능을 단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한표 한표에는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한 상황에서 경제 시스템이 더 망가지면,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담겨있다. 한국경제호가 직면한 위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위기의 본질을 관통하는,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으라는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경제정책에 깃든 ‘이념 편향성’을 단죄한 선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건전재정, 공공요금 민영화, 노동·연금·교육개혁 등을 강조할수록 민생경제의 형편이 더 어려워지는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이는 경제정책에 스며든 친자본·친기업 편향 즉, 굴절된 시장주의 이념이 지닌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정부가 시장을 통한 체질개선을 강조하면, 왜 충격이 민생경제로 향하는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총선은 ‘부자 뺀 건전재정’의 민낯을 심판한 것이나 다름없다.

건전재정의 본질은 ‘부자감세·서민증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법인세 부담을 덜어내는 기업에는 확장재정이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민생경제의 입장에서는 고강도 긴축재정에 가깝다. 수치로 살펴보면, 법인세 세수는 부자감세에 힘입어 2022년 104조 원에서 2023년 80조 원으로 대폭 감소했지만, 정책 소외 영역에 존재하는 근로소득세만큼은 거의 모든 세수가 감소했음에도 57조 원에서 59조 원으로 증가했다. 사실, 작년에 -56.4조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세수펑크를 낸 주범도 건전재정에 깃든 친기업 편향이다.

더 심각한 이념 편향은 민생물가 대란의 주범인 ‘공공요금 시장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정부는 유례없는 고물가 경제하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단행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화를 자처했다. 전기나 가스, 교통 요금 등 누적된 공공적자를 가격 인상을 통해 민간에 전부 다 전가하면, 일시적으로 재정 사정이 좋아지는 착시 현상에 빠지게 된다. 소비자물가가 3% 정도인데 전기·가스·수도 물가가 20% 이상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즉, 철 지난 시장주의 이념이 작금의 민생물가 대란 사태를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가 지금처럼 보편으로 물가 충격을 가하고 선별로 취약계층만 구제하는 행태를 무한 반복하면, 공공적자를 메우는 수단으로 민생곳간이 털리는 악순환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부는 공공발 민생물가 대란 사태를 초래한 책임에서, 국회도 정책과 제도로 정부의 폭주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여당의 총선패배는 경제정책에 뿌리내린 친자본·친기업 편향을 버리고 기울어진 정책 운동장을 바로 세우라는 최후통첩이다.

무너진 정책 신뢰에 보내는 불신임 선거
큰사진보기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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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무너진 정책 신뢰에 대한 민생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코로나발 경기충격의 한복판에서 재정지원이 일거에 종료되자,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이전의 정상 상황으로 돌아갈 복원력을 잃어버렸다.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고금리 충격으로 부채함정에 빠져 가계건전성이 악화되고, 고물가가 쏘아 올린 내수 불황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러한 비상경제 상황에서 정부는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뒤로 빠져 ‘민간 주도, 시장 중심’을 반복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러던 정부가 선거 때 갑자기 나타나 총선용 감세와 지출 공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24회에 걸친 민생토론회를 통해 감세 물량공세와 지출 공약을 퍼부었지만, 그것들이 무엇이고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기억조차 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위기의 본질에서 벗어난 졸속 대책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법인세 감세 등으로 인해 작년에만 87조 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상위 1%를 위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주식양도세 폐지’를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내수 불황으로 자영업이 매출충격 위기에 직면하자 부가세 납부 유예 및 인하 등과 같은 졸속 대책을 들고나왔다. 대파, 사과 등 농축산물 물가 충격이 발현하자 이번에는 수입농산물을 늘리고 가격안정 자금을 투입해 잡겠다고 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런 것들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부실대책임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여기에, 가상자산 납부 유예, ISA 비과세 혜택 확대, 자녀 세액공제 확대, 상속세 인하 등 말이 민생대책이지 논리도 맥락도 없이 세금을 만지작거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것들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민생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위험을 타개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우리 국민은 총선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준 셈이다. 본질에서 벗어난 감세정책, 병 주고 약 주는 지출정책 등에 집착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근본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설령 실패한다고 하여도 문제의 본질을 관통하는 근본대책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과감한 민생확대 재정을 통해 다가오는 민생대란 사태를 조기에 진화해야 할 적기라는 의미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민생위기 극복에 적극 나선다면,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진짜 건전재정’은 단순히 곳간 문을 지키는 곳간지기가 아니라 재정운영의 경기대응력을 높이는 전문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재정운영이란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긴축을 통해 경기 과열을 방지하고, 경제가 어려울 땐 과감하게 재정을 풀어 민생경제를 구제하고 경제를 살려내 다시 곳간을 채우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번 총선이 정부와 국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정부와 여·야 정당이 힘을 모아 ‘민생확대 재정’을 추진해 작금의 민생대란 사태를 조속히 진압하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송두한 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