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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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주식/주식ai : 이재명 대표가 목숨을 던지며 단식을 이어온 이유는 단순히 윤석열 정권의 검찰독재에 대한 저항과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하려는 차원을 넘어 국민을 실망시키는 민주당 정치인들을 대신해 국민에게 사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민주당으로 다시 태어나달라고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목숨을 던져 호소하고 경고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정치검찰의 ‘심리적 2중대’ 역할을 해왔던 저들이 국민과 자당 대표의 등에 칼을 꽂은 ‘9.21 민주당 반란’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원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재명의 입지를 공고화하였고, 저들의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당이 이재명 민주주의로 재탄생해야 하는 이유

중요한 것은 ‘9.21 반란’으로 민주당은 더 개혁적이고 더 민주적인 민주당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생명과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윤석열 정권의 종식을 넘어, 과거에 갇혀 일본을 닮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총선 승리와 정권 탈환에 성공하면 이재명 정권은 제2의 김대중 정권, 제2의 노무현 정권, 제2의 문재인 정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비용이 과거의 민주정권을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명이라는 자연인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라는 자연인과 대비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재명은 ‘이재명 민주주의’로 평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이재명 민주주의’는 김대중 민주주의, 노무현 민주주의, 문재인 민주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 과제에 답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민주주의’는 (동전의 앞뒷면이지만) 과거에 갇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대한민국과 구조적으로 취약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답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랬을 때 이재명의 시대는 열릴 수 있고, 이재명 민주주의로 재탄생한 민주당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존 민주정권이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한 부분이 있는 반면,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 만들기에는 실패하였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비상했다가 갑자기 후진국으로 추락할 정도로 구조적으로 취약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민주정권을 통해 경험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장애물이 바로 대한민국을 과거에 가두고 있는 실체라는 점에서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 만들기는 대한민국을 과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민주정권 때 부동산 자산 증가 심화됐다는 불편한 진실

먼저, 우리 사회가 과거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 문재인 정권(2017~21년)에서 우리나라 전체 소득에 해당하는 국내총생산(GDP)이 235조 9598억 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국내 순자산은 5494조 7427억 원이 증가했다. 소득보다 자산이 23배 이상 증가했다. 가계 기준으로 보더라도 큰 차이가 없다. 같은 기간 가계소득은 176조 609억 원, 특히 근로소득은 140조 8345억원이 증가한 반면 가계순자산은 3334조 294억 원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의 삶이 위기를 겪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 2년(2020~21년)으로 좁혀보면 더 끔찍하다. 국민순소득은 111조 원이 증가했는데 국민순자산은 3239조 원이 증가했다. 자산 증가가 소득 증가보다 29배가 넘는다. 특히 부동산자산이 2825조 원 증가했다. 참고로 같은 기간 주식가치의 증가분은 부동산자산 증가분의 ⅓도 안되는 932조 원에 불과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선진국 중 자산 불평등이 가장 심한 국가인 미국과 정반대이다. 이 기간 중 통화량은 약 700조 원이 증가했는데 이중 실물경제로 흘러간 돈은 2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갓난애까지 포함 국민 1인당 1322만 원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그 이전에 비해 자신을 거쳐 간 돈이 1322만 원보다 적었다면 대한민국 돈의 흐름에서 소외되었음을 의미한다.

둘. 물론 소득과 자산 증가의 비대칭성은 문재인 정권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소득 증가율이 자산 증가율보다 컸지만, 민주정권이 집권한 외환위기 이후부터 비대칭성은 심화하였다. 특히 (다음 표에서 보듯이)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서 소득과 부동산자산 증가의 비대칭성은 확대되었다. 가계의 소득 증가율과 부동산자산 증가율의 격차는 노무현 정권에서 연평균 8.3% 포인트, 문재인 정권 마지막 2년에서 연평균 7.5%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 수치들은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부동산 문제로 정권을 빼앗겼다는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간소득 33년 모아도 서울 아파트 못 사는 또 다른 진실

셋. 대한민국 국세청에 포착된, 소득이 있는 사람이 2021년 기준으로 약 2536만 명이었다. 이들을 일렬로 세울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의 세전 연소득이 2660만 원이었다. 월 222만 원 정도이다. 당시 최저임금 기준 월급이 약 182만 2500원 정도였다. (연소득 기준 2186만 9760원) 하위 40%선의 (세전) 연소득이 2181만 원이 채 안 되니 소득이 있는 국민 중 적어도 하위 40%는 최저임금 수준도 되지 않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금노동자만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2021년 약 1996만 명의 임금노동자 중 소득이 중간인 임금노동자의 소득이 (세전) 월 250만 3192원 정도이다. 대한민국 임금노동자 중 약 절반이 월 250만 원 이하 소득자인 것이다. 하위 32% 임금노동자(약 639만 명)는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도 벌지 못한다. 2021년 9월에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1억 9978만 원이었다. 처음으로 12억 원이 무너졌다며 기사가 쏟아졌다. 중간 소득 임금노동자의 33년치 월급이 10억이 채 되지 않는다. 노동으로 서울에서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땀을 흘리며 살고 싶을까? 온 국민이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많은 청년이 투자 위험성을 알면서도 일확천금을 노리며 코인에 투자하는 것도 땀 흘려 버는 소득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이상 대한민국은 부동산을 매개로 만들어진 카르텔이 공고해지며 대부분 자원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부동산 카르텔의 최대 목표는 부동산 가치를 유지하고 나아가 증대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산적인 가치 창출 활동은 마른 고목처럼 시들어간다. 이런 현실에서는 돈을 아무리 풀어도 실물 경기로는 돈이 별로 가지 않는다. 고인물 사회, 과거에 갇혀 있는 사회가 된 이유이다.

‘돈의 힘 카르텔’ 통제에 실패한 역대 민주정권

부동산 카르텔에는 (돈의 힘을 숭배하는) 모든 특권층이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돈의 흐름이 소득보다 자산, 그것도 세습성이 강한 부동산자산으로 재편되면서 (세습사회와 양립 불가능한) 민주주의가 취약해진 배경이다. 대한민국의 지난 사반세기는 “돈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명제를 확인시켜 주었다. (과거 칼럼에서 여러 번 소개했듯이) 본래 자본주의는 1인 1표 원리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1원 1표라는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이 상호 견제 속에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 역대 민주정권은 돈의 힘에 대한 통제에 실패하였다. 김대중 정권에서 금융은 월가 자본 논리로 재구성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자본에 결탁하여 공적 권한을 사적 이득 추구에 활용하는) 모피아가 성장하였다. 마찬가지로 예산안조차 기재부 관료에게 휘둘릴 정도로 노무현 정권 역시 모피아 해체나 돈의 힘에 대한 통제에 실패하였다.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 중소기업 대책도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이뤄져야지 정부가 정책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실상 재벌 대기업에게 협조를 하소연하였다. 심지어 문재인 정권은 공적 권한을 사유화한 집단의 해체는커녕 모피아를 자신의 파트너로 삼았다. 그 결과가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매판적 극우세력의 성장이고, 한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매판적 극우권력인 윤석열 정권의 출현이다.

국민 기본 권리 찾아주겠다는 것이 이재명 민주주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민주주의’에 대한 ‘이재명 민주주의’의 차별성은 소득과 금융과 주택 등에서 국민의 기본 권리를 찾아줌으로써 시민의 민주적 힘을 강화하겠다는 점에 있다. (과거 칼럼에서 설명했듯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생산물은 ‘사회적 생산물’이고, 이 생산물은 먼저 ‘사회 몫’을 떼어놓고, 나머지를 가치 창출 과정에서 개인의 역할에 따라 나눈다. ‘사회 몫’은 일차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최저 생계소득(기본소득)의 배분,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치안 및 안보 등에 사용한다. 즉 모든 국민이 최저 생계소득을 확보하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의 삶을 선택할 때부터) 시혜나 복지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 권리이다.

또한, ‘사회 몫’은 정부 경제력의 기초를 구성하고, 이 경제력으로 정부가 가치를 보증한 불환화폐(법정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 경제력으로 뒷받침하는, 즉 불환화폐의 가치를 함께 보증한 모든 국민은 금융(신용)에 대한 기본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화폐 가치에 보증을 선) 많은 국민이 은행 신용에 제한받는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의 무능 탓으로 세뇌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소득과 금융과 주택 등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 회복은 국민, 특히 경제적 약자층의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임으로써 인간 존엄을 실현할 수 있고, 민주주의를 강화한다. 즉 대의 민주주의는 공적 권한을 사유화하거나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유화한 신특권층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유사 민주주의’였다. 대리인으로부터 국민의 권한을 회수하여, 국민이 진짜 주인이 될 때만이 주권재민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 몫을 증가시킬 때 자본 측은 ‘사회 몫’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고, (공공금융의 지원을 받아) 민간금융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기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본금융을 도입하면 은행의 수익이 줄어들고, (고금리 영업을 하는) 저축은행이나 카드사 등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공공주택 공급의 증가는 민간주택 공급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에 건설자본과 (돈놀이를 해야 하는) 금융자본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을 걱정하는 것은 봉급쟁이가 재벌총수의 상속세를 걱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국민 기본권 강화만이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 해법

게다가 중요한 점은, 많은 국민의 생계 압박 부담이 줄어들고, 추가로 돈을 활용할 수 있는 국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추구할 수 있다. 몇 사람이 함께 창업을 하면 이자 부담이 거의 없는 충분한 창업자금이 확보된다.

국민의 새로운 시도 없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 수는 없다. 민주주의 강화 없이 과거에 갇혀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 수 없는 이유이다. 국민의 기본권 강화만이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 만들기의 해법이다. 물론 (과거 칼럼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사람을 만드는 일인 ‘교육 혁명’ 역시 절대적 과제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이 살 길은 바로 (억강부약과 대동세상으로 압축되는) ‘이재명 민주주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당이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길이다. 이런 점에서 ‘9.21 반란’은 과거에 갇혀 있는 민주당 정치인을 자연스럽게 정치에서 은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과 정치검찰 부역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민주당은 ‘이재명 민주주의’로 (정치 귀족이 좌우하는 정당이 아닌) 더 강하고, 더 개혁적이고, 더 민주적인 정당이 될 것이다.